신한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재일동포들은 구로공단 건설 참여, 대사관 기증 등 모국의 발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그 오랜 마음이 쌓여 ‘금융보국(金融報國)’ 신념이 됐어요.
‘금융보국(金融報國)’은 ‘금융을 통해 나라와 사회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신한의 서사를 이루는 7B경영이념, 새싹 심벌, 비둘기 마스코트 등에까지 새겨졌어요.
‘신한(新韓)’이라는 이름 속에 녹아 있는 ‘대한민국 금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창업 의지는 현재까지 살아 숨쉬는 서사예요.
은행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 마음
신한은행의 역사는 1982년 창립일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재일동포들은 이미 수십 년째 모국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어요.
8·15 광복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응원하고 반겼다. 1948년 6월 재일동포들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런던 올림픽 선수단의 경비를 전액 지원하고, 요코하마항에 초청해 대표팀 선수들에게 운동용품, 유니폼, 외국 선수단에게 건넬 선물까지도 마련해 주었다.
일본 속 대한민국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재외공관까지, 재일동포들의 손으로 세워졌어요. 1962년 9월 도쿄 대사관을 기증했으며, 1974년 9월 재일동포 사회가 힘을 한데 모아 오사카 총영사관을 건립했어요. 주일대한민국 공관 중 9개가 재일동포의 기증이나 모금운동을 통해 세워졌어요.
이 마음은 경제 분야에서도 이어졌어요. 1963년, 고국에 방림방적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본국 투자가 본격화됐어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 재일동포의 본국 투자 규모가 2,695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국가 외환 보유고 2,000만 달러 상당을 넘어서는 대규모 투자였다.
1967년 4월 한국 최초의 수출공단이었던 구로공단 건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재일동포의 본국 투자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시대 '한강의 기적'에 크게 일조했다.
올림픽 선수단 후원부터 대사관 기증, 구로공단 건설까지 -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재일동포들은 몸은 타국에 있어도 마음만은 늘 모국을 향해 있었어요.
‘금융보국’의 신념이 싹트다.
수십 년에 걸친 이 활동들 속에서,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자라났어요.
“이제는 우리 손으로, 모국에 은행다운 은행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투자와 기부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더 근본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싹튼 신념이 바로 ‘금융보국(金融報國)’이었어요.
금융을 통해 조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이었어요.
그 결과물이 1982년 7월 7일 태어난 신한은행이었어요. 창립기념사에서 이희건 회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신한은행은 많은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이룩한 피와 땀의 결정이며, 애국충정의 승화인 동시에 모국 개발에 대한 참여 의지의 결집인 만큼 국민경제의 번영과 더불어 함께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주주를 모으는 과정도 이 마음 그대로였어요. ‘조직을 세우는 절대적인 조건은 참여자를 많이 만드는 일’이라는 신념 아래 소수의 대주주에게 기대지 않았어요. 일본 전국을 돌며 341명의 재일동포를 한 명 한 명 설득해 힘을 모았어요. 추후 증자 때에도 더 많은 수의 동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어요.
왜 '신한'이었을까요?
모국에 은행을 설립하겠다는 재일동포들의 염원이 실현되는 순간 은행 이름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 왔어요.
‘신한(新韓)’이냐, ‘새한’이냐 가슴 벅찬 양자택일의 고민이 아닐 수 없어요.
‘금융보국’의 신념과 ‘대한민국 금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뜻을 담어 신설은행의 이름을 ‘신한’으로 결정했어요.
은행 이름을 결정한 후 CI 제정 과정에서는 심벌마크로 ‘새싹’, 마스코트로는 ‘비둘기’를 결정했어요.
슬로건은 ‘새싹의 꿈, 키우는 보람’으로 확정했어요. 특히 ‘새싹’ 도안은 그동안 좌우 대칭형으로 제작되던 관행을 탈피해 비대칭형으로 제작했으며, ‘비둘기’는 고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귀엽고 코믹한 모습으로 디자인했어요.
관행을 따르지 않고 비대칭으로 그려진 새싹, 위엄이 아니라 친근함을 택한 비둘기 등은 사소해 보이는 디자인 하나에도 ‘다르게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어요.
7B 경영이념 - 마음의 문장이 되다.
신한이라는 이름에 들어간 마음을 일곱 개의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신한은행의 7B 경영이념이에요. 7B 경영이념은 여전히 신한 서사의 뿌리가 되고 있어요.
나라를 위한 은행(Bank for the National Wealth)은 조국의 경제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는 재일동포들의 열정과 염원을 담아낸 것이자, 신한은행의 설립 동기이기도 해요.
대중의 은행(Bank of Retail)은 고객과의 거리를 좁혀 보다 가까이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것은 물론,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유망 중소기업을 발굴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서로 돕는 은행(Bank of Community)은 은행이 단순히 돈을 취급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지역발전의 중심으로 함께 성장하겠다는 의미예요.
믿음직한 은행(Bank of Disclosure)은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동반자적인 성장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가장 편리한 은행(Bank of Effectiveness)은 선진 금융기법의 도입을 통해 완벽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고, 업무시스템의 효율화로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을 의미예요.
세계 속의 은행(Bank of Worldwide)은 목표시장을 국내는 물론 국제금융시장에까지 넓혀 세계적 은행으로 발전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에요.
젊은 세대의 은행(Bank of New Age)에는 이제 막 성장해가고 있는 중견·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고, 젊은 층·여성 층·중산층을 목표시장으로 설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일곱 문장 모두의 출발점은 같아요. ①번, 나라를 위한 은행이었어요. 나머지 여섯 개는 그 마음이 고객과 지역, 세계로 뻗어나간 방식이었어요.
신한은 시작부터 달랐어요.
신한은 수십 년의 기다림과 341명의 손으로 만들어진 은행이었어요. 그런 만큼 시작부터 여느 은행과는 다른 길을 걸었어요.
1982년 7월 7일, 3개 지점과 279명의 임직원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의 초기 자본금은 은행법상 전국 규모의 은행이 갖춰야 하는 최저 자본금인 250억 원이었어요. 규모의 열세보다 더 높은 벽은 국내 금융계의 관행이었어요. 이미 오래 자리 잡은 기존 은행 앞에서, 신한은 규모로 승부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던 방식을 택했어요.
신한은행은 국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찾아가는 금융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고 섭외 전담 조직을 신설해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을 시작했다. ‘리테일 카트기’에 동전을 싣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자 신한이 은행원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
담보 대출이든 신용대출이든 커미션을 받을 정도였으니, 은행에서 고객을 찾아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던 시대였다. 업계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커미션 관행을 없앤 것도 신한이었다.
‘대한민국 금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지 그대로, 신한은 관행이라 불리던 불합리한 방식들을 하나둘 바꿔가기 시작했어요.
| 다음 이야기
이름과 이념 안에 새겨진 마음이 실제로 ‘조직’이라는 형태로 살아 움직이려면 어떤 원리가 필요할까요? 다음 편은 신한이라는 조직을 어떻게 작동시켰는지를 살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