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남겨둔 한 줄 여백으로 시를 쓰는 풀꽃시인 나태주

2026.09.165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오래 바라보는 마음이 곧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잠시 멈추어 내 안으로 몰입할 때, 사람과 풍경, 삶은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시인과 함께, 오래 바라보고 오래 사랑한 마음이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에게 ‘바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들은 보통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 바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노느라 바쁜 사람도 있고, 아프느라 바쁜 사람도 있고, 먹고 즐기느라 바쁜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바쁨’ 자체보다 그 속에 한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쁨은 우리에게 좋은 것도 주지만 지나치면 피로와 번아웃을 가져옵니다. 저는 혼자 하는 일로도 바쁘고, 강연처럼 남의 일로도 바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으로도 바쁩니다. 그래서 쉴 틈이 많지 않지요. 다만 이런 바쁨 속에서도 조금씩 줄이고 조절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시를 보면 일상의 작은 장면부터 먼 여행의 풍경까지, 삶의 여러 결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시를 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창작은 결국 욕망과 에너지, 충동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오로지 내 안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있어야 안의 에너지도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작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여행입니다. 옛사람들은 ‘행만리로(行萬里路), 독만권서(讀萬卷書), 교만인우(交萬人友)’이라고 했어요. 만 리를 여행하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명의 사람을 만나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야 세상과 인생을 알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봄이면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합니다. 시인에게 여행이란 어떤 시간인지, 또 여행이 마음에는 어떤 쉼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쉽니다. 사람들은 보통 몸의 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이 더 먼저 지칩니다. 일상에서는 나를 찾는 사람도 많고 요구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면 그런 것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 시장을 다녀오는 것도 작은 여행이지요. 어제와 오늘의 풍경이 다르니까요. 여행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진즉, 더 많이 떠날걸 그랬습니다.

최근 탄자니아에 다녀오셨다고요. 어떤 계기로 그곳을 찾게 되셨나요?

네, 저도 사실 예전에는 탄자니아라는 나라를 직접 가보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프리카는 늘 멀고 낯선 곳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러던 중 국제구호단체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탄자니아까지 꼬박 20시간이 넘는 여정이었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해보니 붉은 흙먼지와 뜨거운 햇빛, 사람들의 환한 얼굴이 저를 맞아주더군요. 사진으로만 보던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그 긴 시간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게는 참 특별하고도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문학관을 둘러보면 공간 곳곳에 여백이 많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곳은 마음으로 지친 사람들이 잠시 내려놓고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여백을 많이 남겨두었습니다. 겉보기엔 채워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이 비어 있습니다. 벽도 비어 있고 공간도 비어 있지요. 사람들은 보통 채우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은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질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내려놓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비어 있어야 그 자리에 각자의 마음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비우고 싶어도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비우는 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비우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못 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려놓으면 됩니다. 어느 날 가기 싫은 일이 있었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과 동네 호숫가로 산책을 나갔지요.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니 좋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니 더욱 좋다.’ 좋은 날이란 바로 그런 날입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문학관 안에서도 유독 마음이 머무는 공간이 있나요?

이 문학관은 특정한 물건을 보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멈추고 바라보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방문객들이 발걸음과 마음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다가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이죠. 그러면 처음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조금 달라집니다. 바쁘고 지치고 짜증이 나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2층에서 공주 시내를 바라보는 자리를 좋아합니다. 멀리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문학관에서 바라보는 공주의 풍경에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바라보면 두 산이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월명산, 다른 하나는 일락산입니다. 월명산은 ‘달이 밝게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이고, 일락산은 ‘해가 지는 산’이라는 뜻입니다. 옛 공주 사람들은 달이 뜨고 해가 진다고 말했지요. 그 두 풍경 사이에 공주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저는 이 풍경이 참 좋습니다. 자연 속에는 늘 그런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시인께서는 삶의 가치와 돈에 대한 생각도 자주 말씀하십니다. 시인이 보시기에 치열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요?

돈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매이면 안 됩니다. 사람을 돕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돈으로 하는 것, 몸으로 하는 것,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돈으로 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귀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몸으로 돕는 일은 더 어렵고, 마음으로 돕는 일, 그러니까 걱정하고 응원하고 기도하는 일은 더 깊은 일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마음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를 위해 조용히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이나 스스로를 아끼기 위해 지켜오신 습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게는 자는 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피곤하면 그냥 잡니다. 잠은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은 서 있는 존재지만 계속 서 있으려면 반드시 누워서 쉬어야 합니다. 저는 거창한 루틴보다 잘 쉬는 것이 가장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제대로 된 휴식이야말로 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조용히 길어 올리는, 가장 소박한 기도 같은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풀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을 닮은 꽃이 있다면 어떤 꽃일까요?

젊은 시절에는 구절초를 좋아했습니다. 다른 꽃들이 다 진 후에도 자리를 지키는 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제비꽃에 더 마음이 갑니다. 아주 작고 흔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애잔한 매력이 있는 꽃입니다. 제비꽃은 사람들이 심어서 키우는 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꽃입니다. 씨앗이 바람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가서 또 피어나지요. 저는 그런 모습이 좋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가장 큰 자산은 시와 사람입니다. 평생 시를 써왔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도 소중합니다. 다만 사람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대신 오래갈 것을 남기려 합니다. 탑을 세우고, 건물을 짓고, 책을 쓰고, 예술을 만드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특히 글과 예술은 사람이 떠난 뒤에도 오래 남습니다. 결국 가장 오래 남는 자산은 글과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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