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워·디글로벌라이제이션의 다음 장면
호르무즈 해협 불확실성과 이란의 통행세 부과로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석유 시대의 종식이 앞당겨지고 태양광, 전기차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대규모 중동 재건 자본이 안보 강화를 위한 방위산업 현대화로 대거 이동함에 따라, 성능을 입증한 K-방산 기업들이 수혜를 입고 있습니다.
전쟁중에도 금값은 하락하고 강달러 현상 대신 고물가, 금리 상승 압력이 가해지는 등 기존의 안전자산 공식이 흔들리며 전후 금융질서가 재편되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시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유가와 달러, 방산과 신재생에너지, 스테이블코인까지. 전후(戰後) 세계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투자 문법을 하나씩 다시 쓰고 있다. 이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얼마나 앞서 읽느냐다.
지난 3월 1일, 미국은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이란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을 고려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일각에서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휘말린,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라는 해석도 내놓지만, 최종 결정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양상은 패권국 미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혼란이 이어졌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앞두고 가까스로 종전 MOU에 서명했지만 중동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은 일단 막을 내렸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강한 승부사라 해도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꺼리는 ‘전쟁’을 다시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관심은 새로운 전후 질서로 향한다. 전쟁 이후 국제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을까.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미국과 달러의 위상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그리고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될까.
🔷호르무즈의 60일이 만든 새로운 변수
미국과 이란이 서명한 종전 MOU만 보면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60일간은 자유항행을 보장한다”라고 돼 있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60일 이후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이를 ‘항구적인 자유항행’이라고 말하고 있고, 이란 정부는 60일 이후부터 통항 관련 ‘서비스료’를 받겠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현실적으로는 이란이 60일 후인 8월 말부터 통행세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그 시점부터는 미국의 통제력이 지금보다 약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이를 빌미로 미군이 이란을 재공습한다면 미국 민주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에는 최악의 악재가 되고, 민주당에는 압승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란은 어느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할까?
언론 보도를 토대로 보면 배럴당 1달러 수준, 평균 200만 배럴을 실은 유조선 한 척당 200만 달러, 약 30억 원의 통행세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엄청난 액수는 아니지만 운임과 해상보험료 상승까지 감안하면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는 기름값은 배럴당 평균 10~15달러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즉,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라 하더라도 실제 부담은 배럴당 80달러 이상에 해당하는 수준이 되고, 배럴당 85달러를 넘어선다면 사실상 배럴당 100달러 수준의 고유가와 맞먹는 충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제 전후 세계는 ‘항구적인 고유가 시대’로 첫발을 내디뎠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고유가가 앞당긴 에너지 대전환
그런데 이러한 항구적인 고유가는 결과적으로 ‘석유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류의 대표 에너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격 안정성이 필수적이다. 너무 싸도 안 되고, 너무 비싸도 안 된다. 그래야만 세계경제가 신뢰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고유가가 사실상 영구화된다면 세상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다음 에너지원으로 이동할 것이다.
필자는 그 첫 번째 후보로 태양광을 꼽는다. 아직 석유나 석탄만큼의 위상은 아니지만,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태양광의 에너지 효율은 최근 크게 개선됐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한목소리로 태양광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원전, 그중에서도 SMR(소형모듈원전)이 가장 강력한 대체 에너지 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상용화 속도에서 뒤처져 있고, 인근 주민들의 설치 반대 같은 또 다른 차원의 걸림돌도 넘어야 한다.
최근 K-증시는 마치 ‘삼전·닉스만 기억하는 시장’이 된 듯하다. 투자자들은 “삼전, 닉스 말고는 어떤 종목이 좋나요?”라고 묻는다. 필자는 ‘정유주 → 태양광 → 이차전지’를 제시하고 싶다. 유가가 급등하는 국면에서는 정제마진이 일시적으로 악화될 수 있지만, 적정 수준 이상의 고유가가 지속되면 정유기업들은 오히려 초호황을 맞이한다. 정유주의 실적이 개선되는 한편, 태양광이라는 대체 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잠시 주춤했던 전기차 수요 역시 다시 빠르게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중동 재건? 방위산업 현대화가 먼저!
한때 국내 증시에서는 재건주 테마가 잠시 반짝했다. 초토화된 이란의 상황, 종전의 대가로 미국이 동결했던 이란 자금이 풀릴 가능성, 건설 역량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주를 비롯한 재건 테마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는 지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와도 매우 비슷한 패턴이다.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실제 교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자본은 쉽게 ‘재건’으로 향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처럼 대규모 전쟁이 끝나면 막대한 자본은 역설적으로 재건보다 방위산업으로 더 많이 흘러간다. 이번 이란 전쟁만 보더라도 중동 국가들은 오히려 자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고, 그 수혜를 K-방산 기업들이 고스란히 누리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한국산 방공체계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랍에미리트(UAE)다. 이번 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투입한 요격 미사일 ‘천궁-Ⅱ’가 높은 요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이후 UAE는 추가 물량을 조기에 인도받기 위해 자국 수송기까지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는 물론 카타르, 쿠웨이트 등도 천궁-Ⅱ 도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는 해군 전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K-방산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구축함·잠수함 도입 사업에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참여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의 이라크 K2 전차 수출 협상과 KAI(한국항공우주산업)의 UAE 대상 KF-21 수출 및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도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비극이다. 그러나 자본은 전쟁 이후 국가안보와 방위산업 현대화로 빠르게 이동한다. 이른바 K-방산 빅4로 꼽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KAI의 올해 예상 총매출은 약 3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보다 50% 이상 증가한 규모다.
다만 앞서 전망한 것처럼 구조적인 고유가가 고착화될 경우 중동 산유국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탈 석유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AI 스마트시티를 구축할 수도 있고,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이 일상화된 도시를 만들 수도 있다. 관광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고, 역설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되든 이제 중동은 과거의 중동이 아니다. 중동에는 이런 유명한 농담이 있다.
“할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벤츠를 타며, 아들은 포르쉐를 몰지만,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지도 모른다.” 석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현실을 준비하는 경고에 가까워졌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산유국들은 스스로 더 큰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낙타를 타지 않기 위해서다.
🔷달러 약세의 시작,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번 이란 전쟁에서 자산시장에 나타난 가장 큰 미스터리는 ‘금값 급락’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특히 패권국이 개입한 전쟁에서 금값이 하락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전쟁이 발발한 3월 이후 금값과 은값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였다.
그렇다고 달러가 압도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도 아니었다. 물론 달러 인덱스는 어느 정도 상승한 것이 사실이지만, 2022년 말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금리 인상기에 나타났던 이른바 ‘킹달러’, ‘갓 달러’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미국 국채 시장은 더 의외였다.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이라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자금이 미국 국채로 몰리고 국채금리는 크게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 고유가와 고물가로 인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채금리 역시 큰 폭으로 상승했다. 결국 ‘전쟁이 나면 달러와 미국 국채가 강세를 보인다’는 기존 공식도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나마 주식시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교적 중립적인 흐름을 보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AI 반도체 착시효과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한국 증시, 키옥시아 중심의 일본증시, TSMC가 견인한 대만 증시, 마이크론이 주도한 미국 증시처럼 AI 반도체 관련 기업들만 크게 상승했다. 지수는 꾸준히 올랐지만 투자자들의 체감 성과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투자자와 그렇지 않은 투자자로 갈리면서,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40% 이상의 손실을 기록한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
🔷금도, 국채도 흔들린 시대, 남은 것은 달러의 운명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재까지는 뚜렷한 반전 모멘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변수는 이란의 다음 행보다. 만약 9월부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서비스 수수료를 위안화로 받겠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세계경제의 ‘탈달러’ 시대를 여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러나 최근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대안으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거론될 수 있다. 특히 테더(USDT)나 써클의 USDC와 같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유력한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보라. 비록 석유 자체의 결제는 아니더라도, 호르무즈 해협 통항 서비스의 대가로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위안화가 함께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세상을 말이다.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필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다. 다만 여기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5경 원을 넘어 6경 원을 향해 가고 있는 미국의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본격적인 확산도 결국 이 부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또 한 번 강력한 약달러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약 101 수준인 달러 인덱스를 기준으로 본다면 단순히 97이나 95 수준이 아니라, 90, 85, 심지어 80까지도 내려가는 대폭적인 달러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탈달러 흐름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달러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훗날 사람들은 올해 3월 시작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필자는 이를 ‘탈석유시대의 변곡점’으로 기억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AI 시대, 100% 디지털 경제로 향하는 흐름 속에서 석유라는 전통적 에너지원은 점차 시대적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이제 ‘삼전·닉스만 아는 시장’을 넘어, 그 다음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