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종합연구소 이승재 소장의 조직론과 리패키지 형태로 제작된 조직론 이미지입니다. AI 이미지
Series조직론을 통해 본 신한의 서사

스스로 거듭나는 조직이 가능할까요?

2026.09.017분
핵심 요약

엔트로피 법칙은 조직에도 적용되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처음의 활력과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요.

외부와 교류하는 개방적 구조를 갖추고, 요동(흔들림)을 내부로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조직은 스스로 거듭날 수 있어요.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허물고 허심탄회하게 교류하는 순간 조직은 다시 하나가 되고 새로운 질서가 더욱 단단하게 사람들을 연결해요.

왜 조직은 초기 활력을 잃을까요

방에서 특별히 한 것도 없고, 침대만 잠시 쓴 것뿐인데 어느 순간 방을 보면 지저분해져 있는 경험이 있을 거예요.
물건은 쌓이고, 쓰지 않는 것들이 늘어나고, 어느 순간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알기 어렵게 돼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을 때 어지럽혀지는 현상을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 불러요.
아무런 간섭이 없으면 모든 건 저절로 무질서해진다는 거예요.

조직도 비슷해요. 처음에는 분명했던 목표가 흐려지고, 한때 유용했던 규칙이 관행이 되고, 활발했던 구성원들도 반복되는 업무에 무기력해질 수 있어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처음의 활력과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요.

조직이란 화살과 같다. 날 것인가, 떨어질 것인가. 조직은 사물이 아니라 운동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충동이 정지되었을 때 조직은 자동적으로 사멸한다.
조직은 항상 형성 도상에 있거나 붕괴 도상에 있다.

(출처: 이승재, 『조직론』 , 2007)

가만히 멈춰 있는 조직은 사실 멈춰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무질서가 쌓이는 중이며, 붕괴하고 있는 거예요.

엔트로피는 저절로 작아지지 않아요

여기서 신한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생각을 가져와요. 바우만은 『Culture as Praxis』에서 문화를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의미와 질서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바라봐요.

신한은 이 관점을 조직으로 대입했어요. 조직도 한 번 좋은 문화와 제도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고, 고객이 달라지고, 기술이 바뀌면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해요.

신한이 바우만의 ‘프락시스(Praxis, 실천)’라는 말을 여전히 사용하는 이유가 있어요. 프락시스는 단순히 ‘행동한다’는 뜻보다는 ‘가치와 생각이 현실 속에서 행동을 통해 계속 만들어지고 수정되는 과정’에 가까워요. 계속 행동하고, 해석하고, 수정해야 엔트로피를 막을 수 있다는 상징적 단어예요.

조직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조직은 어떻게 엔트로피를 줄이고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신한은 1977년 비평형 열역학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의 ‘산일구조론’에서 힌트를 얻어요.

그는 외부와 단절된 닫힌 시스템과 달리, 외부에서 물질과 에너지를 계속 주고받는 ‘비평형 개방계(열린 시스템)’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열린 시스템은 외부에서 계속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내부에서 쌓인 무질서(엔트로피)를 밖으로 내보내요. 이걸 ‘산일(散逸, Dissipation)’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열린 시스템에 ‘요동, 흔들림(fluctuation, 유라기)’이 더해지면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는 이론이에요.

이 틀을 조직에 적용한 것이에요. 조직의 개방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보, 새로운 기술을 계속 받아들여 조직 안에 작은 흔들림을 만드는 거예요. 이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면 늘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창업 초기부터 다양한 출신의 인재를 뽑고,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오피니언 리더 활동을 지원하며, 해외연수제도 등 직원 교육에 힘을 쏟은 것은 조직의 개방성을 유지하고, 새로운 자극(fluctuation, 유라기)을 준 것이에요.

사람 사이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요

'새롭게 거듭남'은 물질과 에너지에서만 일어나지 않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똑같이 일어나요.
인류학자 빅터 터너는 이걸 ‘리미널리티(liminality)’ 즉 ‘경계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요.
문지방(limen)이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인데,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의 시간과 공간을 뜻해요. 평소의 직급과 규칙이 잠시 유보되는 순간이에요.

리미널리티 안에서 사람들은 순수한 공감으로 다시 연결돼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의견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데, 터너는 이걸 ‘커뮤니타스(Communitas)’, 감성공동체라 불렀어요.

신한은 이걸 실제로 만들었어요. 신설 점포 개점일마다 은행장부터 본부 직원 전원이 함께 거리로 나간 '가두 캠페인', 1년간 이룩한 성과와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업적평가대회',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접 해결 방안을 제안하는 '고매리 히트' 같은 프로그램까지 조직 내 커뮤니타스를 만드는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고매리 히트 프로그램이란 문제점을 스스로 정의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의사결정권자에게 제안하면 의사결정권자가 제안사항의 채택 여부를 그 자리에서 확정하는 내부 혁신 프로그램이었다. 연수원의 소재지인 '고매리'의 이름을 따서 '고매리 히트(Heat)'로 이름 붙였다.

(출처: 신한은행20년사, 2002)

직급이 잠시 사라지고 서로를 가로막았던 문턱을 넘는 순간 조직은 더 단단해져요. 지금 신한의 일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SAQ 협업, 원온원 미팅 등도 커뮤니타스를 만드는 현대적 장치들이에요.


FAQ. 자주 묻는 질문들
Q
회사 내에서 볼 수 있는 엔트로피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신한은 시간이 지나면 쌓이는 마찰, 낭비, 활력 저하를 설명하는 비유로 엔트로피를 사용했어요.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와 의미 없는 회의, 결재를 위한 결재, 조직 내 침묵 등이 예시가 될 수 있어요.
Q
바우만이 말한 ‘실천(praxis)’은 구체적으로 뭘 실천하라는 건가요?
A
정해진 하나의 행동은 아니에요. 핵심은 ‘한 번 만들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되새기고 반복해야 한다’는 태도예요.
Q
요동(유라기)는 그냥 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들라는 뜻인가요?
A
아니에요. 목적 없는 불안정이 아니라, 그 흔들림이 오히려 새로운 질서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는 뜻이에요. 안정과 자극이 함께 있어야 해요.
Q
커뮤니타스가 생기면 위계질서가 흔들리지 않나요?
A
오히려 반대예요. 리미널리티의 순간은 잠깐이고, 그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질서로 돌아와요. 다만 그 짧은 순간의 유대감이, 돌아온 뒤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요.

| 다음 이야기

조직을 거듭나게 하고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들이 리더예요. 다음 편에서는 신한이 리더에게 요구한 네 가지 감성을 살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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